종자 생명력의 유지를 위한 생땅콩 보관법
좋은 땅콩 종자를 구했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땅콩은 겉보기엔 그저 딱딱하고 건조한 조약돌 같아 보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물과 만나면 언제든 새싹을 터뜨릴 준비가 되어있는 ‘생명 에너지’가 고스란히 담겨져 조용히 숨을 쉬고 있습니다.
이 소중한 생명력을 나물로 기를 때까지 쌩쌩하게 유지하려면 보관하는 동안 땅콩을 깊고 편안한 ‘겨울잠’에 빠뜨려야 합니다.
곰팡이 번식을 막기 위한 습도 차단과 서늘한 온도 유지의 과학
잠자고 있는 생땅콩에게 가장 치명적인 적은 바로 ‘습도’와 ‘열기’입니다.
우리나라의 덥고 습한 여름철 기후나 겨울철이라도 난방을 세게 틀어 따뜻해진 주방 한구석에 생땅콩을 그냥 방치하면 어떻게 될까요? 땅콩은 온도가 올라가고 공기 중에 습기가 많아지면 본능적으로 “아! 봄이 왔구나. 싹을 틔울 때가 되었어!”라고 착각하여 숨을 가쁘게 쉬며 에너지를 마구 소모하기 시작합니다.
이 과정에서 싹을 틔울 때 써야 할 귀한 영양분을 공기 중으로 다 날려버리게 됩니다. 더 무서운 것은 덥고 습한 환경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곰팡이 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번식 장소라는 점입니다. 방어력이 떨어진 땅콩 표면에 곰팡이가 한 번 피기 시작하면 그 종자는 생명력을 완전히 잃게 되며 절대 발아용으로 사용할 수 없는 독성 물질 덩어리로 변해버립니다.
따라서 곰팡이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땅콩의 에너지를 꽉 붙잡아 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늘하고 건조한 환경’을 만들어 생땅콩을 깊은 수면 상태로 유도해야만 합니다.
장기 보관을 위한 올바른 밀봉 및 냉장/냉동 보관 기술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관해야 할까요? 구입한 생땅콩의 양과 보관 기간에 따라 방법이 달라집니다.
만약 한 달 이내에 금방 기를 예정이라면 습기가 차지 않도록 신문지나 종이봉투에 싼 뒤 바람이 잘 통하고 햇빛이 들지 않는 서늘한 뒷베란다 등에 보관하셔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수개월 동안 두고두고 길러 드실 예정이라면 가장 안전하고 완벽한 장소는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냉장실 야채칸’이나 ‘김치냉장고’입니다. 이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생땅콩을 비닐 지퍼백이나 플라스틱 통에 그냥 와르르 쏟아 넣고 닫아버리면 절대 안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종자도 숨을 쉬기 때문에 밀폐된 비닐 안에서 습기가 발생해 물방울이 맺히고 결국 곰팡이가 피게 됩니다.
반드시 지퍼백에 넣기 전에 생땅콩을 신문지나 키친타월로 두툼하게 한 번 감싸서 넣어주십시오. 종이가 땅콩이 뿜어내는 미세한 수분을 싹 흡수해 주기 때문에 항상 뽀송뽀송하고 쾌적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집에 포장용 김이나 과자에 들어있던 ‘실리카겔(건조제)’이 있다면 함께 넣어두는 것도 아주 훌륭한 비법입니다.
[주의!]
냉동실 보관은 피하세요
오래 보관하기 위해 생땅콩을 냉동실에 꽁꽁 얼려버리는 분들이 간혹 계십니다. 반찬으로 볶아 먹을 땅콩이라면 냉동 보관이 훌륭한 선택입니다. 하지만 새싹을 틔워야 하는 ‘발아용 종자’에게 냉동실은 죽음의 공간입니다.
완벽하게 건조되지 않은 땅콩을 영하의 온도로 얼리게 되면 땅콩 세포 속에 미세하게 남아있던 수분이 얼음 결정으로 변하면서 팽창하게 됩니다. 이때 생명선인 ‘배아(싹이 나는 눈)’의 미세한 세포 조직들이 얼음칼에 찔린 것처럼 산산조각이 나며 파괴되어 버립니다. 냉동실에 오래 두었던 땅콩을 꺼내 물에 담갔을 때 싹이 나지 않고 둥둥 뜨거나 허옇게 썩어버리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따라서 싹을 틔울 발아용 종자는 절대로 얼지 않도록 섭씨 0도에서 4도 사이의 ‘냉장 보관’을 원칙으로 하셔야 한다는 점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곰팡이가 무서운데 햇빛에 ‘바싹’ 말리면 안 될까요? (과건조의 위험성)
독자분들 중에는 곰팡이를 완벽하게 막겠다며 혹은 눅눅해진 것 같다며 생땅콩을 쨍쨍한 햇빛에 바싹 말리거나 식품 건조기에 돌리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것은 생명력을 두 번 죽이는 치명적인 실수입니다.
땅콩 종자는 깊은 잠을 자고 있을 뿐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겉으로는 말라 보여도 땅콩 내부에 ‘최소한의 수분(약 8~10%)’이 반드시 남아있어야 합니다. 이 생명수마저 뜨거운 열기로 바싹 말려버리면 새싹을 틔울 심장인 ‘배아(눈)’가 말라 죽어버립니다. 이렇게 과하게 말라 죽은 땅콩은 나중에 아무리 맑은 물에 담가두어도 싹을 틔우지 못하고 퉁퉁 불어 썩어버리게 됩니다.
따라서 직사광선이나 뜨거운 바람으로 인위적인 ‘과건조’를 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며 통풍이 잘되는 서늘한 그늘에서 자연스러운 상태로 보관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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