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거실 한구석에 어지럽게 널브러진 장난감과 뱀이 벗어 던진 허물처럼 여기 저기서 식구들의 옷가지가 가장 먼저 눈살을 찌프리게 합니다. 분명 어제저녁에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픈것을 꾹 참고 꺠끗히 치워두었는데 밤사이 누군가 마법이라도 부린 것처럼 온 집안은 다시 원래의 어수선한 모습으로 돌아가 있습니다. 이불 밖으로 무거운 몸을 꺼내기도 전에 벌써부터 마음속에는 깊고 무거운 한숨이 차오릅니다.
집안일이라는 건 참 야속합니다. 하루 종일 해도 해도 끝이라는 것이 없어 자기전 까지 종종거리며 쓸고 닦고 치워도 티가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가?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나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의 눈에는 그저 당연하고 평온한 집안 풍경 이여서 누구하나 주부의 수고로움을 알아주는 이가 없습니다. 이때 누구라도 “엄마가 있으니 우리집은 항상 깨끗하네” 혹은 “ 당신이 집에서 정말 수고가 많아요”라고 한마디만 해주어도 하루의 피로가 싹 가시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 하루의 마무리까지 힘을 내어 줄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아무도 당신이 오늘 하루 얼마나 많은 먼지를 닦아내고 얼마나 무거운 빨래 바구니를 옮겼는지 알아주지 않으니 집안일이라는 것이 당사자에게는 가장 잔인한 속성입니다.
칭찬은 못할 망정 오히려 하루라도 청소기를 돌리지 않거나 설거지를 미뤄두면 금세 집안 곳곳에서 불평 섞인 목소리들이 터져 나옵니다. “엄마 내 방이 왜 이렇게 더러워” 혹은 “하루종일 뭐 했길래 아직도 설거지가 그대로야!”라는 말들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박힙니다. 이럴때마다 당신은 문득 자신이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무급으로 고용된 가사도우미가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서글픔에 빠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텅 빈 베란다에 홀로 서서 젖은 빨래를 탁탁 털어 널 때면 이 끝없는 노동의 쳇바퀴 속에서 영원히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은 막막함과 지독한 외로움이 밀려오곤 하지요.
하지만 제가 당신의 굽은 등을 다정하게 쓸어내리며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당신이 매일 반복하는 그 지루하고 고단한 노동은 결코 가치 없는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깨끗한 옷차림과 따뜻한 밥 한 끼 그리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는 포근한 이불자리는 모두 당신의 보이지 않는 수고로움 위에서 피어난 기적 같은 일상입니다. 당신이 하루도 쉬지 않고 굴려 온 그 외로운 쳇바퀴 덕분에 당신의 가족들은 거친 세상 밖으로 나아갈 든든한 힘을 얻고 다시 돌아올 포근한 안식처를 가질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스스로의 노동을 하찮게 여기거나 자책하지 말아 주세요. 그리고 텔레비전 속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들과 비교하며 집안에 갇혀 있는 자신을 초라하게 느낄 필요도 없습니다. 당신은 세상 그 어떤 화려한 직업보다도 위대하고 숭고한 당신만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내고 있으니까요. 당신의 그 보이지 않는 땀방울이 하나의 우주를 온전하게 굴러가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마세요.
오늘 하루쯤은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를 그대로 모른 척 내버려 두어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바닥에 조금 굴러다니는 먼지 뭉치를 보더라도 그냥 눈을 질끈 감아버리세요. 식구들을 위해 쓰느라 닳고 닳아버린 당신의 귀한 에너지를 오늘은 오직 당신 자신을 다독이는 데에만 온전히 사용하기를 바랍니다. 끝이 없는 집안일의 쳇바퀴에서 잠시 내려와 가만히 당신의 뻐근한 손목을 주물러 주세요. 당신은 오늘도 티 나지 않는 그 엄청난 일들을 훌륭하게 해내느라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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