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당신은 관공서나 은행에 가서 서류를 작성할 때 머뭇거리며 내 이름 석 자를 적어 내려가던 순간 묘한 이질감을 느낀 적이 있나요. 하루 종일 누구의 엄마나 여보라는 호칭으로 불리다 보니 정작 나침반처럼 나를 향해야 할 내 진짜 이름은 서랍 속 깊은 곳에 잊힌 채 먼지만 쌓여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처녀 시절 반짝이던 꿈을 꾸며 당당하게 불리던 그 이름이 이제는 가족들의 그림자 뒤로 희미하게 사라져 버린 것 같아 가슴 한구석이 텅 빈 것처럼 시려울 때가 있지요.
어느 날 문득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내가 알던 그 생기 넘치던 여자가 아니라 그저 살림에 찌든 중년의 아줌마로 보일 때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습니다. 친구들이 밖에서 번듯하게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며 당당하게 이름표를 달고 일할 때 나만 세상의 속도에서 밀려나 멈춰버린 섬에 갇힌 것은 아닐까 하는 짙은 우울감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신의 이름이 빛을 잃은 것은 결코 당신이 초라해졌거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당신은 그저 가족이라는 아름다운 나무가 튼튼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기꺼이 당신의 이름을 지우고 묵묵히 거름이 되어준 것 뿐입니다. 남편의 성공과 아이의 해맑은 웃음 뒤에는 당신이 포기해야만 했던 수많은 시간과 당신의 이름이 거룩하게 녹아 있습니다. 당신의 이름이 사라진 자리에 가족들의 행복이 눈부시게 피어났으니 당신의 삶은 결코 헛되거나 멈춰있던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가끔은 아주 가끔은 억울하고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이 당연합니다. 텅 빈 집안에서 홀로 청소기를 돌리다 말고 혹은 늦은 밤 베란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잃어버린 내 이름과 나의 청춘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그 마음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건 이기적인 마음이 아니라 나침반이 원래의 방향을 찾으려 요동치는 아주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생존 본능입니다.
이제는 누군가의 뒤에서 그림자로 사는 대신 하루에 단 한 번이라도 소리 내어 당신의 진짜 이름을 불러주세요. 거울을 보며 “오늘도 참 잘 해냈어 다정아” 혹은 “수고했어 지은아”라고 스스로를 다정하게 호명해 주는 겁니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훌륭한 아내와 엄마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당신은 그 자체로 빛나는 이름과 꿈을 가진 너무나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한 명의 여자입니다. 이제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당신의 눈부신 이름 석 자를 가장 찬란하게 빛내줄 시간을 스스로에게 선물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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